
최 정자 마리아 Maria JungJa Choi

어머니의 은혜는 가이없어라“
A mother’s grace is endless and beyond measure.”
Obituary
최정자 마리아님의 부고
사랑하는 저희 어머니 최정자 마리아님께서 2025년 12월 9일 하느님 곁으로 떠나셨습니다
故 최 정자 마리아님께서는
1942년 12월 2일, 대한민국 경기도 안성의 최부잣집 장손의 무남독녀로 태어나셨습니다.
외할아버지께서 일본에 징용되셨다가 돌아가신 후 외할머니께서 재가하시며 조부모님 손에서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셨습니다
형제없이 혼자 자라는게 외로워 사촌동생 세 명을 어린 나이부터 결혼하시기전까지
자식처럼 키워주셨지만 작은아버지의 학대로 인해 받은 고통도 크셨다고 하십니다.
스물세 살 되던 해, 어머니는 집안 어른의 중매로 아버지 연기수님과 혼인하신뒤 아들 둘, 딸 둘 네 자녀를 낳아 기르셨고
경제적 어려움으로 온갖 궃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생계를 꾸려 나가시면서도 언제나 저희들에게 손수 고운 옷을 지어 입히셨고
고된 살림과 일에 치여 밤잠도 제대로 못 주무시면서도 늘 집안을 쓸고 닦으시며
음식 하나도 허투루 담지 않으실 만큼 늘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시는 분이셨습니다.
화장지 한 칸, 쓰레기봉투 하나도 아끼며 사시는 어머니이셨지만 도움이 필요한 친인척에게는 언제나 아낌없이 베푸셨습니다.
중년이 훌쩍 지난 저희들을 끝까지 ‘아가‘라고 부르실만큼 자녀들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셨지만
일에 대한 어머니의 열정과 고집은 그 누구도 꺾을수 없어 돌아가시기 얼마전까지도 일을 손에서 놓지 않으셔서
저희들을 안타깝게 하시며 고집 세기로 유명한 최씨다운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그런 집념과 성실함으로 작은 사업체를 일구시는 동안 크고 작은 여러 지병으로 고생하시면서도
당신의 건강은 언제나 가장 뒷전이셨던 어머니는 올 봄 간암과 간경화 진단을 받으시고도 빨리 나아서 다시 일을 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실땐 이렇게 살아 무엇하냐며 하루라도 더 빨리 할아버지 할머니 곁으로 가고싶다시며
유난히 꽃을 좋아하시던 할아버지가 직접 가꾸시던, 수국나무가 예쁘기로 유명했다는 집 이야기
인자하기로 소문난 할아버지덕에 매일 밥을 얻어 먹으러 오는 사람들이 끝이 없어 어머니도 어린나이부터
할머니를 도와 부엌일을 배우셨다는 이야기
더불어 한글과 구구단을 가르쳐 주셨다는 이야기
그런 할아버지가 어린 어머니를 업고 죽은 아들을 그리워하며 꺼이꺼이 우셨다는 이야기,
그동안 수도없이 들었지만 싫지 않은 이야기를 하루에도 몇번이고 되풀이 하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병세가 깊으셨지만 그래도 조금은 더 견디실줄 알았던 어머니는 기다리시던 봄을 못보신채
12월의 추운 겨울 아침,그토록 그리워하시던 할아버지 할머니곁으로 떠나셨습니다.
세례만 받고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셨던 어머니를 위해 오랬동안 드렸던 기도가 아무 응답도 받지 못한채 끝난듯 보이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되돌아보니 하느님께서는 늘 저희와 함께 하셨고 저희들을 가까이 부르고 계셨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젊은시절 가정을 돌보지 않아 가족을 힘들게 하셨던 아버지가 하룻밤에도 몇번씩 어머니의 옷을 갈아입혀 드려야 하는 상황에
짜증 한번 안내고 어머니를 돌보시며,어머니가 드시고싶다고 하는건 무엇이든 사다주시고 만들어 주셨고
입원중이실땐 새벽 두시고 세시고 어머니가 부르면 두말도 않고 달려가며 보여주셨던 사랑과
신앙에서 멀어져있던 아버지와 오빠가 수십년만에 고해성사를 하고 신앙생활을 다시 시작하게된 일
돌아가시기전 한달반동안 아무것도 못드시고 ,마지막 5일간은 물도 드리면 안된다는 의사의 지시로 목말라하고 배고프다 하시는
어머니에게 젖은수건으로 입술을 적셔 드리는것 밖에 할수 없던 저에게 ’물좀 주세요,물좀 주세요‘ 애원하실때,
십자가에 매달려 목마르다 하셨던 예수님을 떠올리며 고통을 봉헌하게 해주셨던 순간들
간이 굳어 진통제도 수면제도 제대로 쓸 수 없고,모르핀도 부작용으로 쓸수 없게 되어 잠을 못주무실때,
어머니몸에 주렁주렁 달려있는 모든 줄을 빼달라고 요청한뒤 손에 묵주를 쥐어드리고
묵주기도 영상을 틀어 귀에 대어드리니 거칠던 숨소리가 잔잔해지며 신기하게도 편안하게 주무셨던 어머니의 마지막밤,
그렇게 지난 시간들과 그 밤을 생각하니 하느님께서는그 모든 고통중에 언제나 어머니와 함께 하셨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토록 생생한 생명과 죽음,그토록 생생한 고통과 슬픔으로 가득했던 어머니와의 마지막 5일
장례식이 끝나고야 비로소 하느님께서는 아무것도 들어주지 않으셨지만 모든것을 들어주셨다는것을 알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어머니는,어머니의 죽음으로 저희 가족을 하느님께 이끌어 주시고 떠나신것입니다.
비록 살아계신동안 하느님을 섬기는 기쁨은 누리지 못하셨지만
저희 네 자녀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삶에 최선을 다하는 법을 온몸으로 가르쳐 주시고 떠난 어머니께서
고통 없는 하느님 나라에서 평안히 쉬실 수 있다는것으로 위안받으며 하느님께 깊은 찬미와 영광을 드립니다.
In Loving Memory of Our Mother,
Maria Jung-Ja Choi
(December 2, 1942 – December 9, 2025)
Our beloved mother, Maria Jung-Ja Choi, passed away peacefully on December 9, 2025, and returned to God’s loving embrace.
She was born on December 2, 1942, in Anseong, Gyeonggi Province, Korea.
After her maternal grandfather was taken to Japan for forced labor and later passed away, her grandmother remarried,
and she was raised with great love by her grandparents. Growing up as an only child, she often felt lonely, so from a young age until her marriage, she lovingly raised three younger cousins as if they were her own children. However, she also endured deep emotional pain due to abuse from her uncle during that time.
At the age of 23, she married our father, Gi-Soo Yeon, through an arranged marriage.
Together they raised four children—two sons and two daughters. Despite many financial hardships,
our mother never hesitated to take on the hardest work.
She worked tirelessly to support her family, sewing nice clothes for her children by hand, keeping her home spotless,
and preparing every meal with care and intention.
She lived frugally for herself, yet was always generous to relatives and anyone in need.
She was strong-willed, determined, and hardworking to the very end. Even as she struggled with multiple chronic illnesses,
she continued working, believing rest could always wait.
This spring, she was diagnosed with liver cancer and cirrhosis, yet she spoke only of wanting to recover and return to work.
During her final months, and especially her last days, we witnessed profound suffering—but also profound grace. Though she had not been active in her faith for many years, God was deeply present in those moments. Our father cared for her with extraordinary patience and devotion, and through this journey, both he and our brother returned to their faith after decades away.
On her final night, holding a rosary in her hand and listening to prayers, her breathing grew calm, and she rested peacefully.
It was then we understood that God had never left her—not even in her pain.
Through her passing, our family was gently drawn back to God.
What once felt like unanswered prayers revealed themselves as prayers fully answered, just in ways we could not see at the time.
Our mother taught us, through her life, how to give our very best in all circumstances.
Though she did not fully experience the joy of faith during her lifetime, we find comfort in believing
she now rests peacefully in God’s kingdom, free from pain.
Text box
엄마
바느질,뜨개질을 잘 하셨던 엄마
칼국수를 잘 만드셨던 엄마
상추쌈을 맛있게 드셨던 엄마
피부가 유난히도 희고 고우셨던 엄마
손이 길고 예쁘셨던 엄마
아가들과 어린아이들만 보면 좋아서 어쩔줄 몰라하셨던 엄마
홍시와 팥죽을 좋아하셨던 엄마
빚지는걸 죄라고 생각하셨던 엄마
세상에서 엄마 손주들이 제일 잘났다고 생각하셨던 엄마
콤퓨터와 영어를 배우고 싶다고 하셨던 엄마
번듯한 가게보다 길가에서 할머니가 파는 콩나물을 잘 사주셨던 엄마
다시 태어나면 공부를 많이 하고 싶다고 하셨던 엄마
자식들 말을 징그럽게도 안들어주시던 고집쟁이 엄마
손수 고운 수의를 만들어두셨던 엄마
혼배성사때 수녀님께 받으셨다는 묵주를 60년동안 고이 간직하셨던 엄마
엄마,
그동안 너무 고생 많으셨어요.
이제 아픔없는 곳에서 편히 쉬세요.
미안해요,고마워요,사랑해요 엄마!
Mom
whose hands were always busy with sewing and knitting,
who made the best handmade noodle soup,
who enjoyed simple meals like kings foods
Mom
with skin unusually fair and gentle,
with long and beautiful hands,
who loved babies and small children.
Mom,
who loved ripe persimmons and warm red-bean porridge,
who believed debt was a sin
and her grandchildren were the best in the world.
Mom,
who dreamed of learning computers and English,
who preferred buying vegetables from an elderly woman on the street
over shopping in a fancy store.
Mom,
who said that if she were born again, she would study as much as she could,
and who, stubborn to the end
Mom
lovingly sewed her own burial shroud by hand,
who carefully kept the rosary she received from a nun at her wedding for sixty years.
Mom, you have suffered enough.
Please rest in peace, free from pain.
We are sorry.
We are grateful.
We love you—always.
저희 어머니께서 하루라도 빨리 하느님곁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실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We kindly ask you to keep our mother in your prayers, that she may soon rest in eternal peace in God’s loving pres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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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하늘나라로 옮기신 그곳에서는 어느누구보다 예쁜 아가라고 부르신 딸 데레사가 말하면 당장 들어주실꺼 같아요..
분명 예수님과 성모님과 함께 계시겟지요..지상 고통 모두 잊으시고 얼마나 기쁘고 행복하실까요..
어머니, 여기 이곳에 남은 저희가 서로 도우며 예수님 말씀데로 살수 있도록 그곳에서 저희를 위하여 전구해주셔요..제가 이제야 글로 인사드리게되었지만 제 기도중에 어머니의 천국여정의 삶, 청원 잊지 않고 있습니다.
최정자.마리아님~
제가.중학교때부터 기억하는 어머님은 늘 부지런히 집안일을 하시며 내 친구대흠이를 아기보듯 바라보시던. 건강한 어머님이셨습니다
어느덧.세월은 우리를 엄마로 만들어주었고 대신 우리의엄마들은 우리곁을 떠날채비를 하시는
아련한 그리움의 시간여행을
우리에게.주셨습니다
어머님의 긴긴세월 고단하고
힘들고.외로웠던 하루하루를
감히 짐작조차 할수는 없지만
어머님이 보내셨던.이곳에서
모두의.기억속에 사랑과
존경으로.기억될것입니다
늘 당신의.딸을 사랑으로
지켜봐주시고
아가처럼 불러주셨던
어머님
사진속 미소그대로
영원히.기억하겠습니다
직접 뵌 적은 없지만, 글과 사진 하나하나를 따라가다 보니
꼭 한 번은 뵌 분처럼 마음에 깊이 남습니다.
어머니를 향한 테레사씨의 사랑과 그리움이 너무도 고스란히 전해져
읽는 내내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사진첩을 천천히 넘기며
고왔던 소녀 시절의 모습부터, 결혼식 사진과 흑백 가족사진,
작은 아이를 업고 또 다른 아이를 목욕시키던 순간들,
꽃밭에서 환하게 웃고 계시던 얼굴, 그리고 마지막 모습까지…
한 장 한 장이 말없이 한 사람의 삶을 증언하는 듯해
자연스럽게 삶과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어머님이 환하게 웃고 계신 사진을 보며
테레사씨의 코와 미소에 어머님의 모습이 참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손재주와 요리 솜씨 또한 어머님께 고스란히 물려받으신 것이겠지요...
고통의 시간 속에서도
가족을 다시 하나로 묶고,
사랑과 신앙으로 이끄시며,
마지막까지 많은 것을 남기고 떠나신 어머님의 여정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믿습니다.
우리가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분명 하느님의 손길 안에 있었던 삶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는 모든 아픔과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시고
사랑하던 분들 곁에서
고통 없는 평안으로 쉬고 계시기를 마음 깊이 기도합니다.
말로 다 전할 수는 없지만,
이 깊은 슬픔의 시간 속에서도
테레사씨와 가족 한 분 한 분 위에
위로와 평안이 함께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어머님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저도 마음을 모아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지난 봄에 데레사씨가 어머님 병환얘기를 하며 기도부탁을 해서 우리 레지오팀과 함께 어머님 위해 기도드리고 있었습니다. 병마와 싸우시면서 많이 아프시지 않게,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 더 많이 만드시게, 그리고, 예수님 만나시게 기도했어요. 자매님의 마지막 5일간의 투병을 읽으며, 예수님의 고통을 만나고 경험해야 하늘 나라에 갈 수 있구나 했습니다. 정말 열심히 사신 인생, 고스라니 자식들에게 피와 살이 되어 영원히 함께 할꺼예요. 저도 자매님 만나 뵐 수 있게 남은 인생 성실하고 부지런히 살아가겠습니다.
이제 고통이 없는데서 편히 쉬시고 하늘나라에서 손주들 위해 예수님께 기도 해주시고 지켜봐 주세요.
한 번도 뵙지 못했지만, 부고와 사진을 통해 연 데레사 자매님의 어머니인 마리아님의 삶을 조그나마 이해하게 되었고, 늦었지만 감사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의 노고와 사랑을 통해 아름다운 연 데레사님이 지금까지 있을 수 있었고, 자랑스러워 하시던 손주들도 이 땅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 살아갈 수 있을 겁니다. 저에게 좋은 신앙의 친구를 선물해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마라아 자매님.
예수님의 크신 품 안에서 안식하시길 믿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연 데레사 자매님과 가족들의 마음에도 주님의 크신 위로를 통해 평안이 함께하길 기도드립니다.
천국에서 그토록 보고싶어하셨던 부모님들 만나고 계시죠? 어머님을 뵌 적은 없지만 데레사를 통해 들었던 얘기들을 다시 한번 글을 통해 보니
가슴이 아프네요 평생을 헌신만 하시다가 이렇게 허망하게 돌아가셨지만 그곳에서는 부디 아프지마시고 행복하셨으면 합니다 하늘 나라에서 자식들과 손자 손녀 살아가는 모습 흐뭇하게 바라보세요 어머님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합니다
데레사 큰 일 치르고 얼마나 힘들지
마지막에 묵주 손에 들고 돌아가진 어머님의 고운 손 기억할께!!!큰 일 치르고 힘든데 도움이 되어주지 못한것 같아 많이 미안해
한번도 뵌적은 없지만 우리들 모두의 가까운 친척고모나 이모처럼 느껴집니다
연데레사 자매님이 왜 그렇게 곱고 예쁘신지 알것 같아요
자매님의 상냥한 목소리, 웃음소리, 예쁜 몸가짐과 고운살림솜씨며, 아들이 셋이나 되는데도 그저 소녀같으신 모습은 어머님이 자녀분들에게 얼마나 최선을 다하셨는지 보여줍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밭을 행복하게 걸어 천국의 계단을 오르시길 기도 하겠습니다
혼신의 힘을 다하셨던 생을 이제 추억으로 간직하며 평안하시기를..
또 한번 기도하겠습니다
어머님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드려요~
오늘은 하늘에서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으로 편히 계실줄 믿습니다.

